지리산자락 섬진강변 우리사는이야기

내 마음의 차 - 로아차

최근 Update

2019년 07월 06일(토)

등록번호 고객주문문의

 ♠  . Category : Category

 제목 : 매화, 녹차를 만나다... 매화녹차
이름 : 로아차 2015-04-06 17:34:42, 조회 : 11,718
Homepage : http://www.loacha.com

나는 매화를 사랑한다. 아직 이른 봄, 눈과 서리 속에서 피어나는 강인함을 사랑하고, 강인한 생명력이 짙게 밴
향기를 사랑한다. 매화차를 만든 것도 일년 내내 매화의 향기를 곁에 두고 즐길 요량이었다.
매화차만을 홀로 우려 그 향과 맛을 즐기는 것도 좋고, 때때로 녹차와 섞어 마시면 그 흥취는 배가 되곤 했다.

그러나 녹차와 매화차를 함께 넣어 마시면 발생하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둘을 맛있게 우려내는 물의 온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매화차는 방금 끓어 100℃에 가까운 뜨거운 물일수록 향기가 살아나는 반면, 녹차를 같은 온도에서 우리게 되면
쓰고 떫은 성분이 많이 우러나와 녹차 특유의 깊고 그윽한 맛이 덜하다. 반대로 녹차의 첫 잔을 맛있게 우리는 물의 온도인
65℃에 맞추면 매화의 향이 잘 피어나지 못하고 녹차의 향과 맛만 강하다. 기껏 함께 넣은 매화차의 풍미를 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 녹차를 3~4회정도 먼저 우려 마신 후, 매화차를 넣고 물을 다시 끓여 100℃에 가까운
뜨거운 물로 함께 우려 마시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어느정도 위의 단점을 보완하며 녹차와 매화차를 모두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우선은 번거로움이다. 녹차를 마시다 중간에 매화차를 다시 넣어 마시자니 아무래도
한번이면 될 일을 두번해야 하는 번잡함을 감수해야 한다. 또 녹차를 마시는 동안 물이 많이 식어 매화차를 넣고 난 후엔
물을 다시 끓여야 한다. 여유롭게 차를 즐길 시간이 날 때가 아니고서는 자주 마시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로 인해 바쁜 계절을 지나고 나면 녹차와 매화차를 함께 마신다는 생각은 어느새 머릿속 저편으로 미뤄두게 된다.
그러다 매화차를 만들 때가 되면 기억이 되살아나 안타까워 하고, 또 잊고 하는 세월의 반복이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중국이나 대만에서 즐기는 '화차花茶'처럼 만들면 되는 것이다.
꽃 화花자를 쓰고 있지만 녹차의 한 갈래인 화차는 생화의 향을 녹차에 입혀 생화의 향과 녹차의 맛을 함께 즐기는
차이다. 대표적인 것이 재스민차로 재스민 생화를 녹차에 섞어 밀폐된 공간에서 함께 말리면 재스민의 향이 녹차에
배어들어 재스민꽃의 향을 간직한 녹차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화차로 만들기 위해서는 녹차가 필요하고 매화는 녹차가 나오기 두 달 정도 전에 먼저 핀다. 차를 만드는 시기가
어긋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해결 방법은 한가지, 바로 매화가 피기 전 해에 매화향을 입힐 녹차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다.  

작년에 시험 삼아 매화향을 입힐 녹차(이를 중국에서는 '모차'라고 한다)를 미리 만들어 차냉장고에 고이 보관해 둔 것을
꺼내고, 운좋게 예년보다 더 많이 핀 매화도 욕심껏 따서 잘 섞어 두었다가 황토방 가득 널어 향이 배도록 같이 말린다.



【사진1】향이 잘 스미게 녹차와 생매화는 중량비 1:1로 섞어 널어 말린다.


말리는 동안 기분 좋은 매화의 향이 황토방으로 한가득이다. 매화와 녹차는 완전히 마르고 나면 키질을 해서 여분의 마른 꽃잎은 바람에 날려 버린다. 마른 꽃잎이 열처리 도중 부스러지며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키질을 하고 남은 약간의 마른 매화와 녹차는 뜨거운 무쇠솥 안에서 마무리 열처리로 차를 완성한다.


【사진2】매화녹차는 5g / 개완에 물은 약 150cc정도 담긴다.


【사진3】화차는 개완을 사용하면 좀 더 맛있게 우릴 수 있다.
  

'매화녹차'를 처음 마셔보는 시음의 순간, 녹차를 처음 우릴 때보다 조금 더 뜨거운 75℃정도의 물을 개완에 부어 약 15초 정도 우린다. 잘 우러난 찻물을 찻잔에 따르자 코를 벌름거리게 만드는 응축된 매화의 향이 찻물 위를 떠다닌다. 작년 5월 중순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한잎 한잎 찻잎을 따고, 뜨거운 무쇠솥의 열기에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모차를 만들고, 올 3월 초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피어난 매화 꽃 한송이 한송이 따내린 수고가 이 한 잔의 찻물에 담겨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사진4】우려낸 매화 녹차


우선 찻물의 연한 노랑 빛을 눈으로 즐기고, 코로는 찻잔 위의 향기를 마시며 가볍게 찻물을 입에 머금는다. 화려하게 입안 가득 피어나는 매화 향이 기분 좋게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뒤이어 녹차의 묵직함이 여운으로 남는다.
굵다랗게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줄기 사이사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매화같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매화녹차는 조선말 화가 우봉 조희룡(趙熙龍, 1789년 ~ 1866년)의 《홍매도》를 닮았다.



【그림1】홍매도, 조희룡, 19세기경, 종이에 담채


화면 가득 피어나는 분홍빛 홍매화는 화려함을 넘어서 아찔하다. 금방이라도 흩날릴 듯 분분한 매화가 수선스러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굵다랐게 위로 뻗은 매화나무의 단단한 줄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를 그린 붓놀림에 눈과 서리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강단과 의지력이 담겨 한 눈에 보아도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다.

처음 잔의 향기가 아직도 코끝에 머물러 아련한데 더 많이 마시고 싶은 욕심이 앞서 손은 서둘러 다음 잔을 우려낸다.
둘째 잔 물의 온도는 첫 잔보다 조금 높은 80℃정도이고 우려내는 시간은 약 5초 정도로 짧게 한다. 첫 잔에서 충분히
찻잎이 적셔졌기에 짧은 시간에 우려내면 잡스런 맛 없이 깔끔하게 차를 우려낼 수 있다.
첫 잔의 채 피지 못한 향까지 두번째 잔엔 담겨 있어 진하고 깊다. 매화꽃 휘날리는 한 밭의 가운데 있으면 이러할까?
온 몸이 매화향기에 덮이고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띄워진다. 이 한 잔으로 그 동안의 수고로움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다.

셋째 잔을 우려내는 온도와 시간은 둘째 잔과 같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따라내면 둘째 잔보다 노란 탕색은 좀 더 짙고, 향은 조금 약하지만 여전히 맛있는 차가 우러난다.

네번째 잔부터는 물의 온도를 더 올려 약 85℃정도로 하고 우려내는 시간도 15초 정도로 길게 잡는다.이제 녹차가
뒷심을 발휘할 차례다. 지금까지 조연에 머물렀던 녹차가 옅어진 매화의 향을 묵직하게 받치며 어울려 감싸 안는다.
처음과 같이 설렘의 화려함은 없지만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온 듯 몸과 마음이 조용하고 편안하다.

다섯번째,
그리고 여섯번째 잔.

어느새 활짝 핀 매화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와 있다.

  목록보기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현명한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