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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의 시원(始源)과 차문화의 탄생. (4)
◎ 오호 십육국 (五胡 十六國)과 동진(東晉)
오호(五胡)는 글자 그대로 다섯 오랑캐 부족,즉 흉노,선비,저,강,갈을 가리킨다. 오호는 서진(西晉)을 양자
강 이남으로 몰아내고 화북에서 135 년 동안 잇달아 정권을 수립하며 흥망을 되풀이 하였다.(304 ~ 439년)
그 중에는 한인이 세운 왕조도 있고, 그 수도 16개국을 넘었지만 이것을 뭉뚱그려 흔히 5호 16국이라고 한다.
135년동안 16개의 나라가 흥망을 거듭했으니 한 나라의 평균 수명은 8년 남짓에 불과했고, 시대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
이민족(異民族)에 의한 지배는 한족들로서는 과거사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최초의 일이었기에 혼란은
더욱 극심했다. 인구수가 적은 호족(胡族)들은 미처 강남으로 떠나지 못한 한족(漢族)을 지배하는 방식을
터득해야만 했고, 남았던 한족도 이민족의 지배에 적응해야만 했다. 중화사상에 젖어있던 한족의 입장에서
무지막지한 오랑캐에게 자신의 터전은 물론 몸을 섞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런 시대에 생존이 최우선인 상황에서 참고 견디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의 중국인들은 그 시대에 관해 한때 힘이 부족해서 오랑캐에게 욕을 당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들을 지배
했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것은 후일 이민족이 중원에 세운 국가인 요나라와 금나라, 원나라와
청나라때에도 반복된다. 그리고 근대에는 서양열강의 침략에 대해 '중체서용(中體西用)'이라는 말로 되풀이
한다.
중국인이 정치적으로는 다른 민족에게 지배받았으나 결국 문화적으로 지배했다는 논리는 중국인이 즐겨 사용
하는 역사이해방식이다. 중국사학에서는 이러한 논리를 '흡수이론'이라 부른다. 이 이론은 중국역사를 설명
하는 주요한 틀로, 모든 역사를 한족 중심으로 이해하는 지극히 편협하고 위험한 논리적 함정을 곳곳에 내포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조금씩 바로 잡히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중화중심주의는 중국인의 사상의 핵심이다.
노신이『아Q정전』을 통해 그토록 바꾸고자했던 소위 중국인의 '정신승리법'의 원형이 바로 이것이다.
원래 한족漢族의 터전이자 생활영역인 중원中原은 오늘날 중국 하남성을 중심으로 산동성 서부, 산서성
동부에 걸친 황하강 중·하류 유역이 이에 해당한다. 주왕조(周王朝:BC 12세기∼BC 3세기)의 세력범위가
포함되며 중원의 사슴이 주나라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그 쟁탈을 '중원에서 사슴을 쫓는다'라고
하였다. 그후 한족의 세력이 남쪽의 양자강 유역 일대로 확대되고 서쪽으로도 넓어졌으므로, 중원은 하남
성을 중심으로 하는 화북평원(華北平原)을 지칭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오호에 의해 중원인 화북지역을 빼앗긴 시기를 '양진 남북조 시대'라 부른다. 비록 화북지역을
다섯 오랑캐에게 힘으로 빼앗겼지만, 실제 중원의 맥은 양자강 이남인 남쪽 왕조에서 이어졌다는 논리를
내세워 두 지역이 대등하거나 오히려 한족 망명정권이었던 남조왕조가 훨씬 우월했다는 논리를 은연중에
펴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다만 한가지 사치하고 화려했던 귀족문화만큼은 북조보다 남조에서 확실히 맥을
이었다. 차문화 역시 양자강 이남에서 망명귀족들에 의해 더욱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원래 차나무의 성질이 따뜻한 지방에서 잘 생장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
한 강남은 차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또 차가 가진 약리적 효능과 마시는 이의 성품이 변화되는 신비
적 속성이 어우러지며 많은 이야기와 전설을 만들어 냈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로 녹아들었다.
동진말 유경숙(劉敬叔)이 지은『이원』에는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섬현 땅 진무의 처는 젊어서 과부가 되어 두 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차 마시기를 즐겨 했다.
집안에 오래된 무덤이 있었는데 매양 마실 때마다 먼저 그 무덤에 제사를 지냈다.
두 아들이 근심하여 말하기를 '오래된 무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한갓 부질없는 수고일 따름입니다'라고 하며 그 무덤을 파내버리려 하였다.
그 어머니가 애써 그것을 금지시켰다. 그날 밤 꿈속에 한 사람이 나타나 이르기를
'나는 이 무덤에 머문 지 3백 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대의 두 아들이
늘 나의 무덤을 헐어버리려 하였으나 그대의 도움으로 보호되었고
그 위에 좋은 차까지 흠향하였습니다. 제가 비록 땅속에 묻힌 썩은 뼈다귀일지언정
어찌 예상의 보은을 잊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새벽이 되어 뜰 가운데에 돈 10만 냥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돈은 흙속에 묻힌 지 오래된 것 같았으나 다만 돈꿰미는 새 것이었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두 아들에게 알렸더니 부끄럽게 여겼다.
그 후부터는 기도하고 제사 올리는 것을 더욱 극진히 하였다."
집안에 있는 무덤에 기도의 뜻을 가득 담은 차를 올리니 그것이 10만 냥의 돈으로 변하였다! 이 고사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하는 미덕을 지녔음을 찬미하고 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광릉기로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진나라의 원제(元帝) 때 늙은 노파가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홀로 차 한 그릇을 들고 시장에 나가 팔았다.
시장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사먹었는데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 그릇이 줄어들지 않았다.
차를 팔아 남은 돈은 길가에 흩어져 있는 고아나 가난한 걸인들에게 뿌렸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그 고을의 형리들이 잡아서 옥에 가두었다.
밤이 되자 노파는 차를 팔던 그릇을 챙겨 감옥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노파가 차를 파는 고사의 때는 동진 원제(317~322)시기로 장소는 광릉군(지금의 강소성 강도현 동북일대)
이다. 이 또한 전설로서 차를 이용한 사회에의 기여를 통해 차가 지닌 숭고한 덕성을 찬양하였다.
왕부가 지은 『신이기』에는
"여요 사람인 우홍이 산에 들어가 차를 따다가 물소 세 마리를 끌고 가는
한 도사를 만났다. 그 도사는 우홍을 인도하여 폭포산에 이르러 말하기를
"나는 단구자라고 하오. 그대가 차를 잘 갖추어 마신다고 들어 늘 한번 얻어
마실 수 있기를 바랐소. 산속에는 큰 차나무가 있어서 그대를 도와줄 수가
있을 것이오.그대에게 바라건대 다른 날 차가 한 사발 남으면 내게도 남겨주길
바라오"라고 했다. 우홍은 단구자에게 차를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그런 뒤
가족들이 산에 들어가면 언제나 큰 차나무를 얻곤 했다"
고 씌어 있다.
차나무는 신령스런 존재가 도와줘야 찾을 수 있다는, 또 그러기에 신령스런 힘을 갖는다는 믿음이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호거사의 『식기』에는 "쓴 차를 오래 마시면 날개가 생겨 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차를 오래 장복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까지 발전한 것이다.
『속수신기(續搜神記)』는 진(晉)의 문인 사대부가 지은 것으로 귀신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는데, 거기에도
차이야기가 나온다.
"진나라 무제 때 선성 사람인 진정이 늘 무창산에 들어가 차를 땄다.
하루는 수염 많은 한 사람을 만났는데 수염의 길이가 한 길을 넘었다.
그 사람은 진정을 이끌고 산 아래에 이르러
차나무가 무리지어 있는 곳을 보여주고 가버렸다.
얼마 안 있어 다시 돌아와 품속을 더듬더니 귤을 꺼내어 진정에게 주었다.
진정은 두려워하며 차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신비한 기인의 도움으로 차를 따게 되었다는 고사이다.
앞 편에서도 언급헀던 동진시대의 훈고학자 곽박(郭璞, 276~324년)은 『이아주』에서
"차나무는 작고 치자나무와 비슷한데
겨울에도 시들지 않아 그 잎으로 국을 끓여 마신다.
지금은 일찍 딴 것을 차(茶,도)라 부르고,
늦게 딴 것을 명(茗)이나 천(?)이라고 한다.
촉나라 사람들은 고차(苦茶고도)라고 한다."
고 했다.
곽박은 『이아』가운데 '가는 쓴 차이다(가, 苦도也)'라는 문구의 해석에 대해서 최초로 고대의 차에 대한
여러 명칭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차나무의 형태, 성격과 작용, 따서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진나라의 『중흥서』에는
'육납이 오흥태수로 있을 때 위장군 사안이 항상 납을 예방하고자 하였다. 납의 조카인
숙은 손님이 온다는데도 납이 아무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으나 감히 물어
보지를 못하고,가만히 수십 명분의 음식을 준비하였다.
사안이 이미 이르렀는데 진설하여 베푸는 것은 차와 과일 뿐이었다. 숙이 드디어 성찬을
내어와 대접했는데 진기한 음식이 가득하였다. 사안이 돌아가자 납은 조카인 숙에게 마흔
대나 매질을 하고 이르기를 '너는 기왕에 숙부를 빛내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나의 평소의 업까지 더럽히느냐?' 라고 하였다.
육납은 『다경』을 쓴 육우가 자신의 직계조상이라 여기며 매우 자랑스러워한 인물로, 위의 고사와 같이
청렴과 검소함의 상징적 인물이다. 육우가 차가 갖추어야 할 품성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검소와 깨끗함을
손꼽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육납은 차로써 손님을 대접하여 자신의 속되지 않음과 고아한 풍취를 은연중에 드러내려 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고사는 동진의 2대 황제인 명제(299년 ~ 325년)의 사위인 환온의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진서』에 따르면 "환온은 양주의 지방관으로 재임할 때 성품이 검소하여 잔치때마다 오직 일곱쟁반에 차와
과일을 내릴 뿐이었다"고 쓰고 있다. '다과茶果'라는 기록이 처음 보이며, 차를 숭상과 검약의 대상으로
바라본 인물중 한 명이다.
당시 차와 관련된 모든 고사가 이렇듯 고아하고 신비로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속물적이고 난체하고 싶어
하는 습속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남조(南朝) 송(宋)의 임천왕(臨川王)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풍류서 『세설신어(世說新語)』를 보면
"임첨의 자는 육장이다. 젊었을 때부터 명성이 나 있었다.
진나라가 양자강을 건너서 옮긴 뒤부터 임첨은 뜻을 잃었다.
어떤 사람이 마실거리를 내오자
그에게 '이것은 차(茶)입니까 명(茗)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에 괴상한 빛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임첨은 스스로 변명하여 말하기를
'방금 물음은 뜨거운 차입니까,
아니면 차가운 차입니까? 라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임첨은 어려서부터 수재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그는 고향이 북위에 의해 점령되자 양자강을 건너 피난을
갔다. 왕이 강남까지 도망 온 서진의 관료, 문인들과 함께 석두성(石頭城, 江蘇 南京 淸凉山)에서 임첨을
위한 연회를 열었다. 임첨은 연회에서 아는 체를 하려고 준비한 찻물을 보고 "이것은 차입니까? 아니면
명입니까?"하고 물었다. 사실 차와 명은 같은 것이다. 임첨은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제가 방금 물은 것은 이것이 뜨거운지 아니면 차가운지 입니다."
마시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관심을 갖고 눈으로 잠시 보거나 손으로 찻잔을 잡아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인데
오직 매사를 이론적으로만 파악하여 알려고 하는 임첨의 헛똑똑이 이 한 마디에 폭로되었다.
이 일로 임첨의 명성은 크게 실추되고 '스스로 강을 건너 위신을 잃었다.'고 일컬어졌다.
동진의 사도장사 왕몽은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해 사람이 오면 번번이 차를 마실 것을 명령했다. 그 집을 드나
들던 사대부들은 모두 그것을 걱정으로 여겼다. 매번 그의 집에 가게 되면 "반드시 오늘 수재水災가 있겠구나"
라고 말했다. 차 마시는 것을 일종의 재난으로 여겼던 것이다.
지금도 차를 좋아하는 사람의 집을 방문하면 차를 너무 많이 마시게 돼 '물고문 당했다'라는 농담을 종종하
곤 하는데, 당시에도 이런 진담같은 농담이 유행했던 것을 보면 살아가는 시대와 겉모습은 달라도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비슷해서 빙그레 웃음짓게 된다.
◎ 남조 왕조의 변천과 차문화의 발달
동진의 주요 군사 세력은 북방에서 이주한 유민 집단이었다.그 중에서도 군사 요충지였던 형주와 양주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었다. 남조의 강남정권은 형식상 중앙집권적인 관료기구를 갖추고 있었지만,
지방을 통치하고 있던 자사는 언제든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양주에 주둔하고 있던
유유가 동진을 멸망시키고 송(宋,420~479)을 건국했다. 그는 귀족출신이 아니라 낮은 신분의 무장 출신이었다.
송의 건국은 곧 제(齊,479~502),양(梁,502~557),진(陳,557~589)등 남조의 시작이었다.
삼겸지의 『오흥기』에 따르면 태호와 인접한 절강 호주 오정현에는 황제 전용 차밭인 어차원이 있었다.중국
문헌에 나타나는 최초의 황제 전용 차밭기록이다. 송 효무제 효건(454~456)때이다. 이 시기 황제 전용 차밭이
존재한다는 것은 황실에서 차를 상당히 많이 소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와 불교와의 관련도 송 무제 시기에 나타나고 있다.
『송록』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안왕 자란과 예장왕 자상이 담제도인을 만나러 팔공산(안휘성 수현,두부의 발상지)에
갔다.담제도인이 차를 대접하자 자상이 마시고 말하기를
'이것은 감로(甘露)다. 어찌 차라고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송록(宋錄)』은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의 일부로서 남조(南朝)의 사실(史實)을 기록한 책이다.
유자란과 유자상은 송나라 효무제의 둘째와 여덟째 아들이고, 담제도인은 13세때 출가한 스님이다. 당시
유명한 법사였던 그는 팔공산 동사에 거처하고 있었다. 당시 차는 보편적으로 쓰고 떫어서 사람들이 마시기가
쉽지 않았지만 담제도인의 차는 감로라 감탄할 만큼 차를 다루는 기법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차가 승려들
사이에 깊숙히 파고 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차가 이 시기에 안휘성에서도 재배되었음도
알 수 있다.
불교는 B.C 2년경(한나라 애제 원수원년)중국에 전파되었다.『삼국지(三國志)』의「위지(魏志)서융전(西戎
傳)」에는『위략(魏略)』을 인용하여 박사제자(博士弟子)인 경로(景盧)가 대월지(大月氏)왕의 사자였던
이존(伊存)으로부터 부도경(浮屠經: 불경의 다른 말)을 구전(口傳)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불교는 남북조시대에 이르러 크게 융성하였다. 차문화도 불교와 더불어 발전하였다.
『진서』의 「예술전」에는
돈황 사람 단도개는 추위나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항상 작은 알맹이 같은 것만 먹었다.
복용하는 약에는 솔, 계피, 꿀 등과 같은 향기 나는 것들이 있으며
그 나머지는 차와 차조기뿐이었다"고 적혀 있다.
단도개(鄲開)는 진대의 승려로서 원래 성은 맹(孟)씨요 돈황(지금의 甘肅省에 속함)사람이다. 단도개는
하북 임장 소덕사(昭德寺)에서 승려가 되어 절 안의 설선실(設禪室)에서 좌선할 때 차를 마시고 잠을 쫓았다.
나이도 백 살 넘게 살았다. 차가 장수식품중 하나로 여겨졌다.
또, 석도열이 설한 『속명승전』에는
"송나라 사람 석법요의 속성은 양(楊)씨이고 하동 사람이다.
영가 연간에 양자강을 건너 무강 소산사에서 심대진을 만났다.
대진은 이때 나이가 많아 은퇴하여 왕이 하사한 수레를 높이 매달았으며
차 마시는 것으로써 밥으로 삼았다. 영명(永明) 연간에 임금이 오흥태수에게
융중한 예로 서울로 모셔오라는 칙명을 내렸는데 이때 그의 나이 일흔아홉 살이었다"
고 씌어 있다. 남조 송나라 시대에 법요 화상이 오흥군 무강(武康)의 소산사(小山寺)에서 수행할 때 차를
마셨으며 늙어서도 식사를 할 때마다 차를 마셨다. 79세 때에 부름에 응하여 서울로 갈 정도로 건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차와 불교의 만남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술과 육식을 금하는 불교의 계율로 인해 차는 술의 대용이 되었고, 제물의 한가지로 제사에 쓰일 수 있었다.
그리고 차가 가진 약리적 효능은 수행정진하는 승려들에게 좋은 음료가 되었다.
이는 비단 불교뿐만이 아니다. 도교의 일파인 모산파를 창시한 도홍경(陶弘景 456~536년)은『잡록』에서
"차는 몸을 가볍게 하고 뼈를 바꾼다.
옛날에 단구자(丹丘子)와 황산군(黃山君)이 이것을 마셨다"
고 썼다.
단구자와 황산군은 한대(漢代) 전설 속의 두 선인仙人이다.
당나라의 교연은 단구자의 차 마시는 것을 읊어 '단구우인은 밥을 적게 먹고, 차를 마셔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았다(丹丘羽人輕玉食, 採茶飮之生羽翼)'고 하고, 또 '다도를 푹 익힌 완전한 참된 경지, 오직 단구자만이
이 같음을 얻었다(熟知茶道全爾眞, 惟有丹丘得如此)'고도 했다.
위의 예에서 보듯 전한 말기 이후 국교화된 유교가 오히려 남북조 시대에는 그 힘을 잃고 불교,도교 등이
발전하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적인 폭을 넓혀 주었다. 이러한 모습은 훗날 당나라라는 화려한 문화로
만개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남조 양나라 무제의 아들 진안왕은 중국 최초로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했다. 유효작은 왕이 하사한 차 선물을
받고 감격해서 글을 남기기도 했다.
조서를 전하는 이맹손이 교지를 선포하고
쌀, 술, 오이, 죽순, 저(채소절임), 말린 고기, 식초, 차 등의 여덟 가지를 내려주었습니다.
술의 향기가 신성의 것보다 향기롭고, 운송의 것보다 맛있습니다.
물가에서 마디를 뽑은 죽순은 창포와 마름의 진미보다 뛰어납니다.
밭에서 딴 살찐 큰 오이는 더욱 더 맛깔스럽습니다.
보내주신 육포는 실로 묶은 들노루가 아닌데도 신선한 향기가 눈속의 나귀와 같습니다.
보내주신 채소절임은 도자기병에 담은 잉어보다 뛰어나고,
쌀은 한 알 한 알이 옥처럼 빛납니다.
보내주신 차를 마시면 쌀밥을 먹는 것과 같이 몸에 이롭고(명동식찬(茗同食粲))
식초는 귤 맛 같이 좋습니다.
이제 천리 길의 원행(遠行)에도 절구질을 면하고 석 달 동안의 곡식 모으기를
안 해도 되게 되었습니다. 소인은 은혜를 입었으니 큰 의리를 잊기가 어렵습니다.
「진안왕으로부터 군량미 등을 받고 사례를 올리는 글」
'명동식찬(茗同食粲)'은 차를 마시는 일이 밥을 먹는 것과 한가지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또, 진왕은 유효작의 동생 효의에게는 차구(차사발)과 차배(찻잔)을 하사하기도 했다. 당시 남조의 차구는
현재의 소홍,상우,여요 등지였던 월주 혹은 강서 홍주에서 생산되었다. 이들 지역의 도자기 굽던 가마를
통틀어 '월주요(越州窯)' 또는 '월요(越窯)'라 하는데 중국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당시 차사발로 쓰인 것은 연꽃무늬를 띤 주발, 월요연화문완(越窯蓮花文碗)이다. 이 그릇에 새겨진 연꽃무늬
는 불교를 상징한다. 이 시대가 불교의 시대임을 보여주는 주요한 기호인 셈이다.
또,남조시대에 빠뜨릴 수 없는 차구중 하나는 푸른 유약으로 만든 잔탁세트(찻잔+찻잔 받침)이다. 강남과
광동 등지의 가마에서 만든 잔탁이 이전과 다른 점은 이 그릇이 차를 위한 세트라는 사실이다. 그릇이 차
전용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차가 인간의 삶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때만이 가능하다. 물론 그릇보다 차가
먼저 생겼겠지만 차를 전용용기에 담아 마실 정도라면 차를 중요한 약용이나 음료로 인식할 때 가능하다.
차그릇 세트의 출현은 차를 마시는 행위가 약용에서 음료로 바뀌는 차에 대한 인식 전환의 신호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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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양각 연화문 완 (고려,12세기)】(국립경북대 소장)
【남조 잔탁세트(홍주요,6세기)】 (월간 '다도' 2011년 6월호)
이 시기에 이르러 차는 음료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제사에도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남제서』「예지」에 따르면 남제의 무제는 말년에 불교를 믿어 차를 길짐승대신 희생용으로 사용할 것을
명했다. 또한 『남제서(南齊書)』「무제본기(武帝本紀)」의 기재에 의하면
"내가 죽은 후 나의 영전에 가축의 희생을 바쳐 제사지내지 마라.
다만 제사상에 차, 떡, 과일, 육포, 술, 밥만 올리면 된다"
고 하였다. 그리고 또,
"천하에 귀천이 없이 모두 이와 같이 지내도록 하라"고 요구하였는데,
이는 '나에게서 미루어 남에게 미치게 한(推己及人)' 삶의 방식이다.
이것은 제사를 지낼 때 차를 사용했다는 현존하는 기록 중 가장 이른 것이다.
◎ 북조 왕조의 차문화
'호한체제胡漢體制'로 표현되는 두 민족의 동거시대는 북조 왕조의 역사적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당나라까지의 화북역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시대는 호족과 한족이 살을 섞으
면서 서로 피를 나누고 갈등하면서 새로운 색깔의 문화를 만든 또 하나의 중국 문화를 탄생시키는 실험의
장이었다.
동거는 순탄치 않은 법이다. 생각과 문화가 다른 두 민족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5호가 세운
16개의 나라는 북위가 통일했으나 다시 서위,북주,동위,북제로 나누어지고 결국 수나라가 통일했다.
양자강 북쪽을 장악한 이민족 왕조와 이남으로 망명한 한족 왕조 간에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북쪽은
북쪽대로 남쪽까지 지배해서 천하를 통치하려 했고, 남쪽은 절치부심 옛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시대처럼 이 시대도 중국의 분열 시기이지만,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북쪽의 북위에서 수나라까지, 남쪽의 송나라에서 진나라까지를 일컫는 남북조시대는 각
왕조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새로운 정치와 문화를 실험해갔다.
서성(書聖) 왕희지나 화성(畵聖)으로 불린 고개지는 이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며 서예와 회화를 예술로써
승화시켰다. 또 조조나 조식, 도연명 같은 이들이 등장하면서 시문학에서도 빛나는 발전이 있었다. 양무제때
만들어진 시문집인 『문선』은 이러한 시문학의 발전을 말해준다. 춘추전국시대때 제자백가라 불리며 수많은
학문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서로 공존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좀 더 나은 길을 찾으려고 모색했듯이, 이
시대에도 사람들이 유교, 불교, 도교 등의 공존 속에서 더 나은 길을 찾으려고 모색했다.
특히 북쪽 왕조들은 북위의 효문제로 대표되는 이른바 '한화漢化정책'에서 보듯 소수민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정권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민족간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분단상태인 남북조시대는 양자강이란 큰 벽을 사이에 둔 까닭에 문화교류는 결코 쉽지 않았다. 남쪽에서
성행하고 있었던 차문화 역시 북쪽에 전파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효문제의 한화 정책과 사신들의
왕래로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었다. 차문화도 이런 과정에서 북쪽으로 전해졌다.
왕숙(464~501)은 남방의 차문화를 북쪽에 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제의 비서승을 지냈으나 아버지와
형이 무제에게 죽임을 당하자, 북위로 망명한 인물이다. 박식했던 그는 북위에서 크게 환영받았으며 효문제
는 그를 크게 우대하여 공주와 혼인시켰다. 왕숙은 제나라에서 이미 혼인하여 부인을 두고 있었는데, 부인인
서씨가 제나라를 떠나 천신만고끝에 찾아왔다. 그리고 이미 그가 공주와 혼인한 사실을 알고는 절망했다.
그녀는 비구니가 되었고 다음과 같은 오언시를 그에게 주었다.
본래 잠박위의 누에였는데
지금은 배틀 위의 실이 되었네
북을 얻어 바다를 쫓아가니
서로 얽혀 함께했던 때가 몹시 그립구나
바늘은 실을 꿰는 물건이라
바늘귀에는 언제나 실이 자유롭게 넘나드니
비단을 얻어 새옷을 짓는데
어찌 헌 실을 받겠는가!
아내를 버리고 북위에서 새로 장가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천리를 멀다 않고 자신을 찾기위해 비구니가
된 본처에 대한 속죄로 왕숙은 정각사를 세웠다.
『후위록』에는
"낭야의 왕숙은 남조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차를 마시고
순채국 먹는 것을 좋아했다.
북지로 돌아와서는 다시 양고기를 먹고 우유 마시기를 좋아하였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차를 우유에 비교하면 어떤가?'라고 하자
왕숙은 '차는 우유의 종이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라고 대답했다"고 적혀 있다.
왕숙은 처음 북위에 왔을 때 양고기와 발효시킨 양젖 등을 먹지 않고 항상 붕어국을 먹고 목이 마르면 차를
마셨다. 어느날 왕숙은 효문제를 모시고 궁전에서 잔치가 열렸을 때 양고기와 양젖을 아주 많이 먹었다.
이상하게 여긴 고조가 차와 양고기,양젖 중 어느 쪽이 나은지를 물으니, 차맛이 양고기와 양젖의 종,즉
'낙노'라 대답했다. 이때부터 차는 낙노로 불렸다.
자신이 즐기던 차를 '양젖의 종(낙노)'으로 비하시키면서까지 황제의 비위를 맞추며 망명객으로 상서령(6부
를 총괄하는 상서성의 최고 벼슬)에 이를 정도로 입신양명했던 그였지만 결국 효문제의 뒤를 이은 선무제에게
자살을 명받아 생을 끝냈다.
한편 급사중 유호가 왕숙의 풍모를 흠모해서 차를 열심히 마셨다. 팽성왕은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팽성왕
은 강남에서 온 노비도 차를 마시자 놀렸다. 이에 조정의 귀족들에게 연회 때 차를 내놓긴 했지만 모두 부끄
러워 마시지 않았다.오직 강남에서 온 사람이나 귀순한 자들만 좋아했다. 547년경 양현지가 쓴『낙양가람기
(洛陽伽藍記)』에 전하는 내용이다.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입맛을 생각한다면 낯선 음식을 거리낌없이 접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와 문화의
만남은 충돌과 갈등을 거친 뒤에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차의 향기가 북쪽을 물들이기까지
아직 많은 고통과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북위(北魏)의 북양태수(北陽太守)였던 가사협(賈思협)이 저술한『제민요술』은 농업기술서로는 세계에서 가
장 오래되었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당시 북조에서는 유행하지 않았던 차관련 기사를 싣고 있다는 사실로도
매우 반갑고 소중한 자료이다. 10권 92편,11만여자로 구성된 이 책은 533~544년 사이에 간행되었다.
『제민요술』의 '제민'은 일반 백성을 말하며 오곡 ·야채 ·과수 ·향목(香木) ·상마(桑麻)의 종식법,
가축의 사육법, 술,간장의 양조법 그리고 가공,판매,조리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차와 관련된 기사는『제민요술』「권10」에 몇권의 참고문헌을 인용하며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이아』외에 『박물지』와『형주지기』에서 인용한 것으로, 진나라 장화의『박물지』에는 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잠을 적게 잘 수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형주지기』에는 부릉차가 가장 좋다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제민요술』에 수록된 차관련 기사는 북위에서 차가 발달하지 않았던 관계로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두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남방의 주요한 문화로 자리 잡아가던 차가 화북에 적극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화북을 대표하는 농서인『제민요술』에 차가 소개되어 차의 보급은 물론
다른 농서에도 차를 싣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차가『제민요술』에 등장함에 따라 이제 차는
다른 나무와 함께 당당하게 한 항목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한 존재를, 그것도 권위자가 한번 소개하면 후세
사람은 빠트리지 못하고 소개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 통일제국 수나라
수나라의 등장은 분열시기인 남북조시대의 마감과 새로운 제국의 성립을 의미한다. 수나라는 문제(재위 581
~ 604)와 그의 아들 양제(재위 604~617)두 사람만의 왕조에 지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각각 23년과
13년 동안 다스린 수나라는 중국 전체 왕조 중에서도 단명한 대표적인 왕조다. 수나라의 단명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진秦나라의 단명 이유와 같은 앞 시대가 오랜 분열시기였기 때문이다.
수나라는 귀족들이 일군 남북조시대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제국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는 해로운 것
들이 많았다. 수문제는 남북조의 유산을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새로운 재산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 귀족의 수중에 있었던 권력을 한쪽으로 모으는 중앙집권 체제, 통일 과정에서 흩어진 민심
수습은 그가 가장 먼저 할 일이었다. 특히 중앙집권의 문제는 분열 시대를 통일한 왕조가 해결해야 할 핵심
이었다. 수문제도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제도를 준비했다.
그가 꺼낸 카드는 귀족제의 기반이었던 '구품관인법'의 폐지(595년)였다. 실로 376 년만에 세상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는 구품관인법 대신 1904년 폐지된 중국의 관료선발제도였던 과거제의 전신인 선거제를 도입
했다. 이 제도의 도입은 문제가 얼마나 강력한 군주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득권 세력을 유지시킨
제도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백년 가까운 세월동안 중국
을 지배한 귀족에게 칼을 들이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귀족은 당나라
까지 지배층이었지만, 수문제의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과거와 같은 영광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다. 따라서
귀족도 권력과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에 적응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들도 조상 덕이 아닌
실력으로 관료 선발에 응시했다.그리고 그들은 다시 옛날의 영광을 이후 시대에 되찾을 수 있었다.
수문제는 제국 건설에 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남북조시대에 존재했던 균전제를 정비하고
새로운 제도인 조용조를 실시했다. 그는 앞 시대의 제도인 3성(내사성,문하성,상서성), 6부(이,호,예,병,형
,공)을 이어받는 지혜도 발휘했다. 이 제도는 이후 왕조인 당나라와 고려시대의 주요한 행정제도였다.
수 문제가 이처럼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스갯소리지만 차 때문이었다. 그는 황제가 되기 전 어떤
귀신이 나타나 머릿골을 바꾸는 꿈을 꾸었다. 그 이후부터 그는 심한 두통에 시달렸지만 약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스님이 나타나 "산중의 차나무 잎이라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그것을 달여
마셨더니 효험을 얻었다. 이 소식을 들은 천하 사람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명나라 진인석(1581~1636)의 『잠확거류서』와 『동다송』에 언급되어 있다. 수 문제의 두통과
차 이야기는 차의 성분과 권위를 전파하기 위해 누군가가 만든 것이지만, 수나라 문제를 등장인물로 설정했
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본격적인 차문화가 시작되는 단계를 수나라의 등장과 연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수문제와 차얘기는 우스갯소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나라 지도】
수양제는 검약한 군주였던 아버지의 풍부한 유산으로 출발했다. 어느 시대든 아버지 혹은 조상의 유산을 많이
물려받은 자식과 후손은 유산을 불리기보다 소비하는 데 관심을 많이 둔다. 수 양제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대토목공사와 대외원정을 실시했다. 흔히 양제의 대토목공사와 대외 원정이 수나라의
멸망을 낳았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양제의 토목공사와 대외 원정은 많은 부분이 통일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양제가 건설한 대운하는 실로 중국의 역사를 바꾸는 큰 공사(大役事)였다. 북경에서 항주에 이르는 대운하의
길이는 부산에서 서울의 세배에 이르는 1천 5백킬로미터가 넘는다. 대운하 건설의 역사는 진나라와 한나라
로부터 시작하지만 수양제 때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장안에 도읍을 정한 수나라는 605년 황하와 회수를 잇는 통제거, 회수와 양자강을 연결하는 한구를 건설했다.
또 608년 황하에서 북으로 북경에 이르는 영제거를 뚫었으며, 610년 양자강에서 남으로 항주에 이르는 강남
하를 열어 남북을 잇는 대운하를 완성했다. 통제거 건설에서 강남하 건설까지는 5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건설 기간은 건설장비가 크게 발달한 지금도 쉽게 달성할 수 없을 만큼 짧다. 그만큼 막대한 인력과 재정을
소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제는 왜 운하건설에 목숨을 걸었을까? 수문제가 남북을 통일했지만 단지 정치적 통일에 불과했다. 진정한
통일은 남북간의 교류없이는 불가능하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영토를 가진 중국이 남북간에 인적,물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교통없이는 불가능하다. 수양제는 그런 교류가 제국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데
절대적임을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중국 서북 지역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던 터키의 조상인 돌궐과 고구려를
물리치기 위해서도 경제적 안정은 필수였다. 수양제가 건설한 운하가 사회 경제적인 교통수단으로 크게 활용된
것은 당나라에 이르러서이지만, 운하는 통일제국의 초석을 마련하는데 반드시 실시해야 할 국책사업이자,
제국의 중요한 인프라였다.
대운하 건설로 인한 인적,물적 교류는 남북간의 문화교류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전히 남쪽 중심이었던
차문화는 대운하를 따라 건설된 주변의 도시와 상업의 발달로 북쪽으로 빠르게 확산, 보급되었다. 그리고
수나라 다음 왕조인 당나라에서 중국 차문화는 그 꽃을 활짝 피운다.
* * *
우리는 네 편의 글을 통해 차의 시원(始原)과 차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기 시작했는지 살펴 보았다.
차를 마시는 것은 단지 영양 섭취의 한 행위에 불과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차는 특유의 약리적 효용성을
발판으로 총체적 삶의 방식에서 의미를 획득함으로써 문화로 형성되어갔다. 체험으로 검증된 삶의 통찰력을
통해 밑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토대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 깨달은 가치들은 다음 세대에게 은연중에, 그러나 확고하게, 전승된다.
다음 편부터는 '2. 음(飮)에서 품(品)으로... 당나라의 차문화'를 연재한다.
마실거리의 일종이었던 차는 당나라에 오면 하나의 문화를 뛰어넘어 종교의 경지에 다다른다. '다도茶道'가
그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차를 마시는 행위는 세속적인 차원을 초월하여 무심정적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정신의 기술이 된다. 차 한잔에 그 마시는 시간을 지우고 빈 자리에 영원을 들어 앉히며......
많은 기대와 질정 바란다.
※ 참고자료
1. 5호 16국과 남북조 시대의 변화를 이해가 쉽도록 지도로 표시한 것을 참고삼아 싣는다.
【A.D 280년 경】
【A.D 327년 경】
【A.D 336년 경】
【A.D 382년 경】
【A.D 395년 경】
【A.D 409년 경】
【A.D 412년 경】
【A.D 498년 경】
【A.D 546년 경】
【A.D 572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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