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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차茶의 시작은 언제인가?(4)
◎ '김'대렴인가? 대렴인가?
신라 시대에 골품제라고 하는 엄격한 신분제가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골품제는 개인이 타고난
혈통의 존비(尊卑)에 따라서 정치적인 출세는 물론 혼인, 집의 크기, 의복의 빛깔이나 심지어는 우마차의
장식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특권과 제약이 가해지는 제도였다. 이 제도는 신라가
6부족의 연맹국가에서 귀족국가로 전환하고 있던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법흥왕 7년(520) 율령을
반포할 때 이미 법제화되었으며 그것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거쳐 그 멸망에 이를 때까지 변함없이 신라
사회를 규제하는 근본원리로 기능하며 작용하였다.
골품제는 원래 성골(聖骨)/진골(眞骨)의 골신분과 6두품에서 1두품까지의 6개 두품신분을 합쳐 8개의
신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후 성골이 소멸되었고 3두품 2두품 1두품은 평인(平人,또는 百姓)의 한
신분으로 합쳐지게 되었다.『삼국사기』「권33, 色服 등 志」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신분으로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 그리고 평인의 5개 신분이 있었던 것으로 나오고 있다.
신라의 관등제도는 골품제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관등제도는 법흥왕(6세기 초) 때에 완성되었는데
모두 17개의 관등이 있었으며, 경위(京位:王京人) 17등과 외위(外位:地方人) 11등의 이원적 체계로 구성
되었다. 경위의 경우에도 진골(眞骨)은 최고 상한선인 이벌찬까지 승진할 수 있으나, 6두품은 6위인
아찬(지금의 차관급)까지, 5두품은 10위인 대나마까지, 4두품은 12위인 대사까지 승진의 한계가 제한되어
있었다.
신라는 법흥왕 8년에 최초로 중국의 왕조중 하나인 양梁에 사신을 보낸다.그 이전까지는 고구려등을 통하여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다가 비로소 국제무대에 홀로 당당히 서게 된 것이다.
진평왕때가 되면 중국에도 5호16국의 혼란이 끝나고 수나라를 거쳐 당나라가 세워진다. 신라는 적극적으로
당나라와 통교한다. 자발적으로 토산물을 조공으로 바치고, 진흥왕 이후로 써오던 자주적인 연호도 폐지하고
당나라의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잦은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때문이었다.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어 적들로부터 자신의 안녕을 꾀하려 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삼국사기』에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낸 경우 사신의 이름이 대부분 기록에서 빠져 있다는
점이다. 보통 '왕이 사신을 당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내지는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와 같이 사신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사신의 중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록할 가치가 없어 누락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음의 기사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2년 봄 2월에 당 현종이 성덕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오랫동안 안타까워하고 애처롭게
여기더니, 좌찬선대부 형숙을 홍려소경으로 삼아 보내와 조상하는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형숙이 장차 떠나려 할 때 현종이 형숙에게 말하였다.
"신라는 군자의 나라로 불려 자못 글을 할 줄 알아서 중국과 비길 만하다. 그대는 독실한
유학자이므로 신절을 가지고 가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경전의 뚯을 펴 보여 그들에게
대국의 유교가 융성함을 알게 하라."
또 현종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 하여 솔부 병조참군 양계응을 부사로 삼아
보냈는데, 우리 나라의 고수들이 모두 그의 아래에 들었다. 이에 왕이 형숙 등에게 금,
보물, 약품 등을 후하게 주었다. -『삼국사기』 卷第九 효성왕 2년(738년)
즉, 당나라 현종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는데 신라의 학문수준이 높아 자칫 당나라에서 보내는 사신의 수준을
얕잡아 보일까봐 신경써서 보냈다는 기록이다.
당나라에서 신라의 학문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신라에서 건너온 사신을 통해서였을테니, 당나라에
보내는 사신을 이름이 남겨지지 않아도 될 정도의 보잘것 없는 자는 보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오히려 당나라에 사신만 전문으로 가는 관등, 또는 직책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다. 즉, 그 일을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이름이 생략된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사신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그 공적이
사서에 남을만큼 대단하기에 특별히 그 이름을 남긴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차나무 씨앗을 가져온 사신 대렴이 그러한 경우이다.
겨울 12월에 당 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문종(文宗)이 인덕전(麟德殿)에 불러 대면하고
연회를 베풀어 주었으며 차등을 두어 하사품을 내렸다. 입당(入唐)했다 돌아온 사신
대렴(大廉)이 차(茶)의 씨앗을 가지고 와, 왕이 사자에게 시켜 지리산(地理山)에 심도록 하였다.
차는 선덕왕 (善德王)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행한다.
(『삼국사기』卷第十 흥덕왕3년(828년) )
(위의 지리산(地理山)은 『삼국사기』원문의 표기이다. 현재는 '智異山'으로 쓴다.)
위의 기사는 ≪책부원귀≫ 권976 포이 태화(太和) 2년 12월조에 동일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
文宗이 흥덕왕 3년에 입당한 신라 사신에게 베푼 잔치에는 발해, 실위(室韋), 거란(契丹), 남조(南詔)의
사신도 참여했다.
이에 대하여는 전편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정기 일가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공이 많은 신라를 치하하고
그에 대한 상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신라로서는 영광스럽고 막중한 자리에 대렴이 신라의 대표로서 참석한 것이다.
여기까지의 사실을 놓고 살펴본다면 『삼국사기』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대렴은 아찬이상의 관등을 가진
진골임이 확실하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신라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영광되고 막중한 자리를 진골이 아닌
다른 골품의 사람이 차지했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조선시대에 사신단의 총책임자인 정사(正使)는
2품 이상의 관원(판서나 정승급)을 선발하여 보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대렴이 진골이라면 그의 성은 국성인 '김'이 확실하다. 위의『삼국사기』의 기사는 보통의 경우처럼 국성인
'김'을 생략하고 이름만 기록한 것이 틀림없다.
삼국사기는 그 성이 헷갈릴 염려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이름만으로 기록을 남겼다. 즉,우리가
잘 아는 김유신이나 김춘추도 보통은 '유신'이나 '춘추'로, 그리고 높일 필요가 있을 경우엔 '유신공',
'춘추공'등과 같이 국성인 김을 생략하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 전편에 걸쳐 그러하며 대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래의 기록을 보면 더욱 확실하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태종무열왕 (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 (眞智王)의
아들인 이찬(伊?) 용춘 (龍春)의 아들이다. 어머니 천명부인 (天明夫人)은 진평왕(眞平王)의
딸이고, 왕비인 문명부인 (文明夫人)은 각찬(角?)서현의 딸이다. 왕은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하여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뜻이 있었다. 진덕 [왕]을 섬겨서 지위는 이찬을 역임하였고,
당(唐)나라의 황제가 특진(特進)의 [관작을] 제수하였다. 진덕 [왕]이 죽자 여러 신하들이
이찬 알천 (閼川)에게 섭정을 요청하였으나 알천이 굳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저는 늙고 이렇다 할 덕행(德行)이 없습니다. 지금 덕망이 높기는 춘추공 (春秋公) 만한 이가
없는데, 실로 세상을 다스릴 뛰어난 인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라고 하였다.
마침내 그를 받들어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는데, 춘추는 세 번을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卷第五 태종무열왕 1년 (654년)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국성인 '김金'이 생략되어 있다. 현대의 표현대로 성과 이름을 모두
표기하자면 춘추는 '김춘추'이고, 용춘은 '김용춘', 서현은 '김서현'(김유신의 아버지),알천은 '김알천'이다.
대렴을 두고 혹자들은 성이 '대'씨이고, 이름이 '렴'이라고들 하나 이는 정말 무식의 소치다.
『삼국사기』를 진정으로 일독만 하여도 저지르지 않을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그냥 원문의 기사대로 '대렴공'으로 표기하자고 하나, 이는 현대에 들어와 성과
이름을 함께 부르는 것과 맞지 않는다. 성씨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고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김춘추','김유신'이 맞고 그렇게 부르는게 옳다면 '김대렴'이라 부르는 것이 옳고 맞다.
◎ 왕명으로 차씨를 심은 지역은 어디인가?
이 가운데 현재 차나무가 발견된 곳은 화엄사,연곡사,천은사 및 경남 쌍계사
네 곳이다. 김대렴이 옮겨 심은 장소가 어느 절의 경내인지 판명되지 않았지만,
다만 다산(다산 정약용)은 이를 쌍계사일 것이라 하고, 화엄사의 전 주지인
정병헌 스님은 화엄사의 장죽전일 것이라 말한다. 지리산은 그 자체의 이름이
대지문수사리중의 두 글자를 딴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중국 산서의 오대산
(곧 청량산)이 차의 본산인 것처럼,이 대화엄사가 조선차의 본산이 되어 있는
것도 이해될 것이다.
『조선의 차茶와 선禪』《1부 조선차의 역사와 분포》모로오까 다모쓰(諸岡 存)
조선의 차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겨울인 음력 12월,당나라에 들어간 사신인
김대렴은 당나라의 왕으로부터 귀빈 대우를 받으며 인덕전에서 개최된 잔치에
초대되었다.그때 대접받은 차를 진귀하게 생각하고,귀국할 때 차의 종자를 가지고
온 것을 흥덕왕의 분부에 따라 지리산에 심어 가꾼 것으로서, 그 뒤 7~80여년 뒤인
신덕왕의 시대(재위 912~917년)에 이르러 비로소 성행된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신라는 9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지리산은 9주 중에서 진주권에 편입되어
화엄사도 진주 고을안에 있었다는 것은 <여지승람>에도 있는 바와 같다.
또 흥덕왕 당시에 지리산 기슭에는 주민이 모이는 일이 지극히 드물어서, 사찰도
다만 화엄사 하나 뿐이었다. 화엄사는 연기,원효,의상,정행 등의 고승이 배출되었으며
지극히 훌륭하였으므로 차를 화엄사에 분부하여 심게 하였으리라.
특히 화엄사의 산림안에 있는 긴대밭의 차는 경상,전라의 양도를 통틀어서 예부터
유명하여,아마도 김대렴이 이 긴대밭에 차를 심어 그때부터 조선의 차가 보급된 것으로
화엄사는 조선의 차 밭산지가 아닐는지(이 사항은 더 깊은 조사가 필요하다)
이 긴 긴대밭(長竹田)이라는 곳을 실제로 둘러 보았는데,절에서 10정(1.9Km)쯤 되는
기슭의 황전리 부락으로, 길 오른쪽 골짜기의 시내를 건너서 2정(380m)쯤의 곳이다.
현재 이 땅은 마산면 횡전리로서 같은 마을의 김경엽씨 소유로 되어 있다.면적은
3정보(29,757 ㎡)쯤인데 남서향으로 경사는 20˚나 되고, 2·3년 전까지는 참대(苦竹)이
자라고 있었으나 지금은 대나무를 벌채해 숲가에 조금 남아 있다. 초생지에는 차가 많이
자라고 있었으며 베다 남은 대나무그루에는 지름 한치(3㎝)가 못되는 대나무가 있었다.
초생지는 산 아래턱의 절반 정도가 개간되어 있다. 유서깊은 긴대밭의 황폐는 참으로
애석하여 군청의 관계직원에게 보존방책을 의뢰하였다.
지리산 쌍계사(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에 있다)에도 예부터 차나무가
있는데,다산 선생은 이 쌍계사의 차를 김대렴이 옮겨 심은 차 종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쌍계사는 김대렴의 사후 1백 5십년 후에 창건된 절이므로 이 설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절도 없는 깊은 골짜기에 차를 심을 이유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의 차茶와 선禪』《2부 현지답사》 이에이리 가즈오(家入一雄)
위의 글을 길게 인용한 이유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차시배지(始培地) 논쟁'의 원인이 되는 단초를 윗 글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차시배지 논쟁'이란 쉽게 말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종자를 심은 곳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위의 인용글은 1940년 일본에서 발행된『조선의 차茶와 선禪』이라는 책에 나온 것으로, 이 책은 일본인
모로오까 다모쓰(諸岡 存)와 이에이리 가즈오(家入一雄)가 공동으로 지은 것이다.
의학박사이자 차茶연구가였던 모로오까(1879~1946)가 '1부 조선차의 역사와 분포'를 저술하였고,
'2부 현지답사'는 전라남도 산림과에 근무했던 산림기사 이에이리(1890~1962)가 작성하였다.
이 책은 한반도에 자생하고 있던 차나무의 식생과 분포를 밝힌 최초의 책으로 일제의 침탈과 민족동란을
겪으며 잊혀진 조선의 차를 되살리는데 커다란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토록 훌륭한 자원이 있음에도 이를 활용치 못하는 우매함과 능동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조선을 그려낸다. 오류와 결점이 없는 완벽한 일본과 그 거울로서 조선인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은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필요조건이었다.
이 책 역시 그와 같은 그릇된 틀 안에서 자신들의 시각에 맞추어 대상을 정의하고 평가하고 있다.
차나무의 씨앗을 들여와 심은 지역이 절의 주변일 것이라 보는 것부터가 그러하다. 일본의 경우엔 중국에서
들여온 자들이 모두 승려이고, 차씨를 자신이 주석하는 절주변에 심었다.
하지만, 신라에서는 사신이 천자로부터 하사받았으며 왕명에 의하여 심었다. 차나무 씨앗은 천자로부터
책봉된 명분있는 지배자로서의 권위를 과시하는 중요한 신물인 것이다. 왕권강화책으로 활용가능한 귀중한
것을 사찰주변에 심었다는 것은 이치적으로 따졌을 때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왕실전용농원과 같이 왕이
직영하는 토지에 심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신라시대의 왕실전용농원이라 함은 어디를 지칭하는 것인가?
바로 특수 거주 구역인 향(鄕)과 부곡(部曲)이다.
고려시대까지 천민 집단 거주지역으로 향,소,부곡이 있었다.
이중 '소所'는 중앙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물품을 생산·공급하는 기구이다. 예컨대 자기소(磁器所)·
철소(鐵所)·은소(銀所)·금소(金所)·동소(銅所)·사소(絲所)·지소(紙所)·주소(紬所)·와소(瓦所)·
탄소(炭所)·염소(鹽所)·묵소(墨所) 다소(茶所)등의 명칭으로 알 수 있듯 수공업 생산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였다.
이와 달리 향(鄕)과 부곡(部曲)은 농업생산에 치중한 행정구역으로 부곡민은 매매,양도되지 않았다는 점에선
노비보다 신분의 지위가 높았으나, 이들 역시 천직賤織으로 맡은 일에 따라 지방의 호장이 장악하였다.
1530년(중종 25년) 완성된『신증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진주목> 의 <토산조土産條>에 흥덕왕명에 의해
김대렴이 차씨를 심었다고 적어 놓았다. 즉,진주목 관할의 어떤 구역이 『삼국사기』가 전하는 차나무
씨앗을 심은 곳이라는 것이다. 당시 진주목 관할의 부곡은 두 곳으로 '화개부곡'과 '살천부곡'이 여기에
속한다. 위의 이에이리가 적어놓은 화엄사가 '진주고을' 소속이라는 것은 잘못된 기록으로『신증 동국여지
승람』에 따르면 화엄사가 포함된 구례현은 '남원도호부'소속이었다.
화개부곡은 신라 경덕왕때 '현'으로 이름이 바뀌긴 하였지만, 이는 전국을 9주로 나누는 와중에 생긴
행정상의 이름일 뿐, 부곡의 역할은 계속하였다. 이는 고려 현종때 다시 '화개부곡'으로 강등된 후,
『신증 동국여지승람』이 쓰인 조선초기까지 그 이름이 남아 있는 데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화개부곡은 차를 키우고 찻잎을 따는 것 뿐만이 다소(茶所)를 두고 차를 만들어 왔다.
차나무를 키우고 찻잎를 따고, 딴 찻잎으로 차로 만드는 일은 힘든 일이다. 고려시대까지 천역중 하나로
분류되던 일이 차를 만드는 일이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 천역으로부터 벗어난 차농들이 차나무에 불을 질러
없앴겠는가?
그런 천역을 신라시대 특권계급중 하나였던 승려 집단이 하였으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승려들이 사찰
주변에서 차를 키우고 국가에 공납하였던 것은 병자호란 이후의 일로 당시 승려는 천민계급이었다.
고려시대까지 승려와 사찰은 국가에서 보호하고 존중받던 곳이었지, 공물의 생산과 같은 부역에 동원되던
곳이 아니었다. 이는 신라 당시의 기록인 여러 선사들의 탑비문을 통해서도 살펴 볼 수 있다.
탑비문중 그 어디에도 차를 생산한다든지, 차를 길렀다든지 하는 기록은 없다. 오직 차를 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는 기록만 보인다. 신라시대 승려는 차를 생산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는《차는 언제부터 '차'가 되었나?》편의 신라 선사 탑비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대로 흥덕왕조의 기사대로 왕명에 의하여 지리산에 심었다고 한다면, 심은 지역으로는
화개부곡이 가장 유력하다. 조선시대 내내,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1980년대까지 '지리산에 심은
것 = 하동군 화개면'이라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었다. 1985년 사단법인 한국차인연합회에서는 5월 25일
을 '차의 날'로 선포하며 《김대렴공 차시배추원비 金大廉公 茶始培追遠碑》를 쌍계사 입구에 세웠다.
【김대렴공 차시배추원비 金大廉公 茶始培追遠碑】
그런데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며 각 지자체마다 문화관광사업에 열중하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웰빙붐과 함께 차茶가 문화상품으로 크게 각광을 받으며 콘텐츠 개발에 열중하고 있으며, '차시배지'는
좋은 소재중 하나이다. 그러기에 많은 지자체에서 저마다 나름의 근거를 대며 논쟁에 뛰어든 상태이다.
특히『조선의 차茶와 선禪』과 그 책에 나오는 만우 정병헌(1891~1969)이 1930~1938년까지 화엄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화엄사의 사적을 정리하여 쓴《해동 호남도 지리산 대화엄사사적》은 논란에 불을
지핀 주역이다.
하지만 두 책 모두 오류투성이의,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근거없는 자료를 중심으로 책을 썼다. 이런
책을 근거로 삼아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스스로 무지를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 역사가 역사가 되기 위하여는 객관적인 사료로 입증되어야 하며, 또한 엄정한 비판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확인이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를 흔히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 현재를 살아갈 교훈을 얻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돈벌이를 이유로 만들어진 거짓 역사를 통해 무슨 교훈을 얻고 배움을 얻겠는가?
※ 참고자료
1. 사실 통일신라시대의 사람을 두고 성씨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들중
성씨를 사용한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씨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신라말기~고려초기이며, 고려중기에는 일반 양민들도 대부분 성씨를 갖게 되었다. 천민층까지 성씨를
칭한 것은 조선후기에 와서이다.
실제로 '박'혁거세나 '김'알지와 같은 시조의 성은 후대에 성씨를 사용하며 윤색해 붙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참고문헌 : 『삼국시대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역사연구회)
2. 논의에서 벗어나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화개곡에는 진감선사가 옥천사(쌍계사의 전신)를 세우기 이전에
절이 이미 있었다. 엄밀한 의미로 진감선사는 옥천사를 창건한 것이 아니라 중창(重創)한 것이다.
《진감선사대공탑비》에 따르면 830년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 선사는,
처음에 상주(尙州) 노악산(露岳山) 장백사(長栢寺)에 석장을 멈추었다. 의원의 문전에
병자가 많듯이 찾아오는 이가 구름같아 방장(方丈)은 비록 넓으나 물정이 자연 군색하였다.
드디어 걸어서 강주의 지리산에 이르니 몇 마리의 호랑이가 포효하며 앞에서 인도하여
위험한 곳을 피해 평탄한 길로 가게 하니 산을 오르는 신과 다르지 않았고 따라가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바가 없이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여겼다.
곧 선무외(善無畏) 삼장이 영산에서 여름 결제를 할 때 맹수가 길을 인도하여 깊은 산속의
굴에 들어가 모니(牟尼)의 입상을 본 것과 완연히 같은 사적이며, 저 축담유(竺曇猷)가
조는 범의 머리를 두드려 경(經)을 듣게 한 것 또한 그것 만이 승사(僧史)에 미담이 될 수 없다.
이리하여 화개곡의 고(故) 삼법화상(三法和尙)이 세운 절의 남은 터에 당우(堂宇)를 꾸려내니
엄연히 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진감선사대공탑비》최치원
윗 글에 등장하는 삼법화상은 아래와 같은 일화를 갖고 있다.
삼법화상( ? -739)은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湘)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총명한
지혜가 있어 능히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에 통달하였다. 당시 중국에는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크게
선풍(禪風)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그를 찾아가서 도를 묻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713년(성덕왕 12) 육조가 입적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 매우 애통해하였다.
그뒤 6년이 지나서 금마국(金馬國) 미륵사의 승려 규창(圭昌)이 당나라에서 귀환하면서 가지고 온
《법보단경 法寶壇經》을 보고 “스승이 이르기를 내가 입적한 뒤 5, 6년이 지나서 1인이 나의 머리를
취하러 올 것이다.”라는 대목을 읽다가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힘껏 도모하여서 우리나라에
만대(萬代)의 복전(福田)을 지으리라.”하였다.
이에 김유신(金庾信)의 부인이었던 법정(法淨)비구니에게 2만금(金)을 빌려서 상선을 타고 당나라로
가서 홍주(洪州)의 개원사(開元寺)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신라 백률사(栢栗寺)의 승려 대비선백
(大悲禪伯)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서로 친하여 의논하던 중 이 절에 기거하던 장정만(張淨滿)에게
2만금을 주고 육조의 정상(頂相=머리)을 취하여오게 했다.
그뒤 귀국하여 법정 비구니가 주하는 영묘사(靈妙寺)에서 밤마다 육조의 정상에 공양을 올렸다.
뒤에 한 승려가 꿈에 나타나서 자신의 인연터가 지리산 아래의 눈 속에 등나무꽃이 핀 곳이니
그곳으로 옮기도록 명하였다. 그래서 대비와 함께 지리산을 더듬다가 12월인데도 따뜻하기가
봄과 같고 등꽃이 만발한 곳이 있었으므로, 이곳에 돌을 쪼아서 함을 만들고 깊이 봉안한 뒤
조그마한 암자를 세웠으며 선정(禪定)을 닦기에 힘썼다.
18년 동안 이곳에서 수행하다가 739년 7월 12일에 목욕하고《법보단경》을 염송하다가 앉아서
입적하였다. 문인들이 유체를 받들어 운암사(雲巖寺)에 유장(遺葬)하였다.
제자로는 인혜(仁慧)·의정(義淨) 등이 있었다. 신라말 진감국사(眞鑑國師)는 지리산 화개곡에
있는 삼법화상의 유지를 찾아가서 옥천사(玉泉寺)를 창건하였는데, 이것이 현재의 쌍계사(雙磎寺)이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위의 기록대로라면 삼법화상의 절이 창건된 것은 728년경으로 화엄사보다 30 여년 앞선 것이다. 화개곡에
절이 없었다고 하는 이에이리의 주장은 잘못되었다.
3.살천부곡은 지금의 경남 산청군 시천면으로 이 곳에 대하여는 좀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4.《해동 호남도 지리산 대화엄사사적》에서 화엄사 차시배설의 주장 부분은 다음과 같다.
신라의 차는 지리산에서 비롯되었다. 연기조사는 진흥왕 4년(544년)에 지리산의 양지바른 곳에
절을 짓고,현판에 화엄사라고 한 것이 지리산에 절이 서게 된 시초다. 연기스님이 차씨를
가져와서 절을 창건함과 동시에 절 부근과 뒤편의 긴 대밭에 함께 심었다. 그리하여 흥덕왕
또한 이 곳에 심도록 분부하였는데 이 때문에 긴 대밭의 죽로차는 나라 안에서 이름이 났으니
호남 일대는 조선차의 다향이다. 그 고적을 살펴보면, 먼저 화엄종을 전하여 포교하였지만
후에는 선종이 흥하였기 때문에 차를 따라서 심게 되었고,드디어 차생산의 본고장이 되었다.
1)화엄사의 창건 연대는 1979년 발견된 '신라백지묵서대방화엄경'이란 문서를 통해 신라 경덕왕(742-762)때
창건되었으며, 연기는 서라벌에 있는 황룡사의 승려였음이 밝혀졌다.
2)화엄사의 긴 대밭(장죽전)은 위치가 주장하는 사료마다 달라 정확성이 없으며, 죽로차란 명칭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나오는 것으로,조선시대까지 남원도호부(구례)에서 생산되던 차는 '작설차'로 불리웠다.
3) 1669년에 중관해안이 지은《호남도 구례현 대화엄사 사적》에 보면 차종자나 차시배와 관련된 어떠한
기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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