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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차 - 로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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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04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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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뜨겁게 안녕!
이름 : 하동댁 2018-08-16 17:58:29, 조회 : 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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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의 무더위를 거듭하는 동안
우리에게 산뜻한 바람을 선사해 준 착하디 착한 에어컨이
깊은 숲까지 혹독하게 달구는 여름 앞에서
더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인연과의 이별은
더러 그 대상이 물건이라도
쓸고 닦으며 애정을 준 세월만큼 먹먹해져
쉽게 떠나보내기가 어렵다.

며칠 곁에 두고
천천히 헤어짐을 준비한 끝에
순순한 마음으로 안녕을 고했다.







지나는 바람 한 줄기 없이
헉헉 뜨거운 숨이 턱까지 치받쳐도
의연하게 여름 한 번 나보자, 마음을 꽉꽉 다져먹고는

청량한 박하를 갈무리 하였다.
바스락 대도록 말려 청차에 더하면
가슴으로 화한 박하 바람
잔잔히 스며들테지.







아랫밭을 가꾸시는 할머니가 마을에서 올라오셨다.
껍질은 빨갛고 속은 샛노란 감자를 한 바구니 그득하게 담아 들고서.
올해 새로 농사 지어봤는데 서울 새댁이 좋아할 맛이라며
땀 나는 산비탈길을 쉬지도 않고 오셨다.
뜨뜻한 선풍기 바람 앞에서 잠깐,
얼음 띄운 홍차 한 잔을 꿀,꺽,꿀,꺽, 소리내어 비우고는
곧바로 일어서신다. 집에 가서 얼른 개 밥 줘야 한다고.

할머니의 빨간 감자는 파실파실한 것이 어찌나 구수하던지
삶아서 내놓으니 식구들 모두 얼굴에 땀방울을 매단 채
게 눈 감추듯 배를 채웠다.
남은 거 너댓 개, 오이 넣고 샐러드 해서
먹은 거 기억하자고 딱 한 장 기념사진 남기기.







해마다 여름이면 텃밭에서 농익은 토마토를 따서, 말린다.
올해는 여느 해 보다 내리 쬐는 태양광이 강렬하여
자꾸 뒤집지 않아도 사흘만에 꼬들꼬들하게 말랐다.
설거지해 엎어놓은 그릇도 단 한 시간만에 손이 데일 듯 뜨겁게 마른다.
자외선 살균 소독에 건조까지 뜨락에서 해결하니
이럴 땐 또 혹서도 막 이쁘고.







보석같은 토마토 드레싱.

썬드라이드 토마토에  
바질, 로즈마리, 딜, 고수, 초피, 방아잎, 박하도 몇 잎 다져넣고
올리브오일 부은 다음 우메보시와 후추 갈아 보탠 후에
다져서 얼려놓았던 마늘을 새끼 손가락 한 마디 만큼 떼어 합해서
마늘 녹으라고 나무 숟가락으로 콩콩콩 짓찧고 있는데...

...어라...?
양이 자꾸 줄어드네? 무슨 일이지?

불길한 기분으로 그릇을 살짝 들어보니
으악!
구멍 뚫린 유리그릇 아래로 기름이 주루루 흐른다.
급한 마음에 양푼을 대고 뚫린 구멍으로 기름을 받다가
다급해진 마음에 유리그릇에 아직 남은 내용물을 뒤집어서 확 쏟았다.
쏟으면서 어어, 이건 아닌 거 같은, 한층 불길해진 기분으로
양푼 속을 살살 훑자, 으아악!
자잘자잘자잘 모래만 한 유리조각들이 서너 개도 아니고 자꾸 나온다.

아아...보석같던 나의 토마토 드레싱...
묻었다. 땅 푹 파서.
등줄기를 주루루 훑는 식은땀이
더위를 보탠다.







그래도 잘 먹고 살아보겠다는 집념으로,
그러나 한편으론 김이 새서 이번엔 그냥 간단하게
로즈마리만 자르고 말린 토마토 새로 꺼내 오일에 절였다가

포카치아 반죽 위에 정성껏 발라 부풀려서
열 바짝 오른 오븐 안으로 밀어 넣었다.

구우면서, 어...말린 토마토를 올려 빵 구워본 적은 없는데...
괜찮겠지...?
근데 왠지 불길한 이 기분은 또 뭐냐...

드디어  마침을 알리는 알람이 삐릭삐릭 울었을 때
오븐 문은 아직 열지도 않았는데
오븐 앞에 선 나는 이미 절망하고 말았다.
아아아악!
탔어? 탄 거야? 그런 거야?
아아아악!

나의 보석같던 썬~드라이드 토매로...
미안하다. 진정 무식이 죄다!








말린 토마토를 밀폐 된 오븐 안에서
고온으로 파악 구우면 어찌 될 거라는 것쯤 미리 알아채지 못했다는 걸
몹시 분해하는 나를 남자 식구들이 위로한다.

돈까스 튀겨줄까?
아니 이 염천에 그거 진심?
미쳤다 치고.
흑흑 그 열기, 기꺼이 견디겠어요.

그 길로 남자 식구들 부랴부랴 읍내 정육점을 다녀왔다.
그런데 어어, 저 봉다리 왜 저렇게 커 보여?
불안한 마음으로 이게 대체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씨익 웃으며

5 키로.
한 번 하려면 크게 맘먹어야 하는데 기왕에 튀기는 거 넉넉히 해놓으면
다른 반찬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

허허허...
미쳤다 치고라는 말 나왔을 때 벌써 알아봤어야 했어!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남자 식구들 저거 튀기느라 땀을 한 바가지씩은 흘렸다.
끓는 기름솥에 이미 온 집안이 쩔쩔 끓는 용광로가 되어
견디는 여자 식구들 역시 땀을 한 바가씩은 흘렸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얼음같은 지하수로 샤워를 하고도
금세 온몸이 기름칠한 것 마냥 다시 땀으로 번들댔지만
아으...
돈까스는 어쩜 그렇게 바삭하고 꼬시한 게 맛있었던지.
이를 득득 갈면서 두 번 다시 여름엔 돈까스 따위(!) 거들떠도 안 볼거,
라던 사람 처음부터 이 집엔 안 살았던 걸로.







도대체 수그러들 기미가 손톱끝 만치도 비치지 않던 폭염에 지쳐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에어컨 있는 서울 여동생네 집으로 피서를 떠났다.
식구들이 한꺼번에 집을 비울 수는 없어 남편과 둘이 시간을 보내는데
쩔쩔 끓는 한낮이 되자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것 같아 더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겠어서 도서관으로 피서를 나섰다.
마침 부쳐야할 택배도 있어 어차피 우체국엘 내려가야만 했기에 이참에 겸사겸사 잘 됐다는 마음이었는데...







어어어어...
아아아아~~~~악!!!

차 타고 출발한 지  채 2 분이 지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

우리집은 거의 산마루에 닿아있고
내려가는 산골길은 간신히 차 한 대 드나들 정도로 좁은데다 (만약 중간에 마주오는 차와 맞닥뜨리면 어느 한 쪽이
비킬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차를 빼주어야함) 급하게 경사졌다.
게다가 길의 한 쪽은 산으로 막혀있지만 다른 편은 곳곳이 얕아도 1~2 미터 , 깊은 덴 5 미터 가량 낮은, 낭떠러지로 이어진다.  
길 사정이 이렇다보니 안전한 길에서마저 점잖게 운전하는 남편도 이 길 위에서는 특별히 조심을 해왔기에
20 년 가까이 여기 살며 한 번도 사고를 당해본 일이 없다.
그런데...








꼬불길 급경사에서,
오른편에 5 미터 아래 절벽이 코앞인데,
갑자기 위잉~하는 굉음이 터지더니
차는 걷잡을 수 없이 속도가 올라가는데
브레이크,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는다.

공포에 목이 조여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던 그 순간,
남편은 왼편의 산을 긁으며 무덤으로 이어지는 기슭으로 차를,
쳐박았다!
순식간이었다.

기슭이라고는 했으나 말이 기슭이지 실상은 넓은 고랑같아 내가 들어가 서면 허벅지의 반이 묻힐 만큼 그리 만만한 깊이는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슭에서 자라던 커다란 소나무를 지난 겨울 마을 사람이 땔감한다고 잘라가며 기슭보다 조금 높게
그루터기를 남겼다는 것.
그러니까 마무리 된 상황은
우리 차가 나무의 그루터기를 거칠게 쓸며 몸체 뒷부분이 간신히  그루터기 위에 얹힌 모양새.
그루터기가 없었더라면 속도를 못이겨 차가 뒤집혔을 거라고 상황을 수습하러 왔던 분이 말씀하셨다.







튀어나올 듯 심하게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으나
하늘이 도와 우리 부부는 털끝 하나 다친 곳 없이 무사했다.

신문에 연일 보도되듯 어떤 자동차들처럼 불이라도 나지 않은 것은 또 얼마나 다행인지.
마른 풀이며 나무들 빽빽한 이 숲에서 차가 제 스스로 시뻘건 불을 토하기라도 했더라면...
상상만 해도 두려워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여 차에 대한 나중은 전적으로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어떤 불평도 불만도 갖지 말자고 둘이 약속했다.







차를 길로 꺼내올리는 데 온전히 2 시간이 걸렸다.
우거진 나무 아래 서서 상황을 내내 지켜 보아야했던 우리는
건조한 바람 한 조각이나마 걸치지 못해 굵은 땀방울을 비 오듯 쏟아내는 레커차 기사님께 심한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끌어낸 차는
만신창이였다.

재작년에, 18 년간 몰며 정들었던 차를 바꾸며 새로 구입해서 애마 다루듯 소중히 타던 찬데.







급발진, 이란 바로 이런 경우라고 확신한 우리와 달리
차를 맡은 공업사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급발진으로 인정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우리의 주장은 자동차 회사에서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조언을 했다.
만일 이 건으로 소송을 걸 경우 거대한 세력에 눌려 승소도 어렵겠지만
그렇게 되면 보험사측에서도 보험처리를 해 줄 수 없게 되어 있다고.
아직은 법이 그렇다고 담담한 어조로 충고해주었다.

뱃속에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가슴까지 달구었지만
힘과 힘이 모아질 그 때를 기다려 반드시 우리의 힘을 보태겠노라 다짐하는 것으로 뒤끝 미지근한 합의를 보고말았다.







자차 보험을 들긴 했지만 차를 고치는 동안 빌릴 차는 보험처리 없이 개인적으로 부담을 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우리가
좀 안 됐던 모양이다.
공업사 사장님이 선뜻, 바깥에 그냥 세워두는 차가 한 대 있는데 작아도 상관 없다면
차 수리 마칠 때까지 사용해도 괜찮, 다며 타기를 권하신다.

하하하...
공간을 가르듯 멍하게 웃는 입과는 달리 눈꼬리 끝이 살짝 촉촉해졌다.

작다고는 하나 방금 물 뿌려 세차해 놓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바닷빛깔 차.
키를 받아 차를 돌리는데 뭔가...위로받은 기분이 들며 불덩이 같던 가슴이 천천히 식었다.
차갑고 톡 쏘는 레모네이드를 한 잔 건네받은 느낌?







모처럼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던 날.
집안팎 문이란 문을 죄 열어젖혔더니 어우 얼마만이냐 산 속의 이 서늘함.







입추도 넘겼고 이제 말복을 지나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뜨거웠던 여름도, 스스로 안녕을 고해오겠지.
곧 물러날 여름을 재촉하며 미리 건배를 종용한다.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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